강화도 조약 (조일수호조규, 1876.2) 자주/개항/해안/치외
1조선국은 자주의 나라이며, 일본국과는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4부산은 양국의 오랜 통상 구역이었으므로 이곳에서 무역 사무를 처리한다. 또 제5관에 따라 두 개 항구를 열어 왕래 통상한.
5관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함경 5도의 연해 중 통상에 편리한 항구 두 곳을 지정한다.
7관 조선국은 일본국 항해자가 자유로이 해안을 측량함을 허가하여 그 위치와 깊이를 상세히 조사하여 지도를 만들어 양국의 선객들이 위험을 피하고 안전을 도모하게 한다.
10관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 지정의 각 항구에 머무르는 동안에 죄를 범한 것이 조선국 인민에게 관계되는 사건일 때에는 모두 일본국 관리가 심의한다.




조일 수호조규 부록 (부속조약, 1876.7) 10/화폐
4관 부산에서 일본인의 간행이정을 10로 제한한다.
7관 일본국 국민은 본국(일본)에서 사용되는 화폐로 조선국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물자와 마음대로 교환할 수 있다.


조일 무역 규칙 (통상장정, 1876.7) 3
6조 조선국 항구에 머무르는 일본인은 쌀과 잡곡을 수출할 수 있다.
7조 일본국 선박은 항세를 납부하지 않으며, 수출입 상품에도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조일 수호 조규 속약 (1882.7) 50/여행
1조 부산, 원산, 인천 각 항의 간행이정을 사방 각 50리로 확장하고, 2년 후 다시 각 100리로 할 것, 1년 안에 양화진을 개시할 것.
2조 일본 공사, 영사 및 수행원, 가족의 조선 내지 여행을 허락하며, 여행 지방을 지정하면 예조에서 증서를 발급하고 지방관은 증서를 대조하여 호송한다.




조일 통상장정 (무역규칙 수정, 1883.7) 방곡령/관세/최혜국
37조 만약 조선국에 가뭄, 수해, 병란 등의 일이 있어 국내 식량 결핍을 우려하여 조선 정부가 잠정적으로 쌀의 수출을 금지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1개월 전에 지방관이 일본 영사관에 통고해야 한다.
40조 조선 화폐에 의한 관세 및 벌금 납입을 규정한다.
42조 일본 상인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인정한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 (1882.4)
1조 대한 조선 국주와 아메리카 합중국 대통령 및 그 인민은 각각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만약 다른 나라가 침해하는 일이 있으면 상대국에 알려 반드시 서로 돕는다.
5조 무역을 목적으로 조선국에 오는 미국 상인 및 상선은 모든 수출입 상품에 대하여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14조 조선국이 어느 때든지 어느 국가나 어느 나라 상인에게 본 조약에 의하여 부여되지 않는 어떤 특혜를 허가할 때는 이와 같은 특혜는 미합중국의 관민과 상인 및 공민에게도 무조건 균점한다.






제물포 조약 (1882.7.17.)
1조 금일부터 20일 안에 조선국은 흉도를 체포하고 그 괴수를 엄중히 취조하여 중죄에 처한다. 일본국은 관리를 보내 입회 처단케 한다. 만일 그 기일 안에 체포하지 못할 때는 응당 일본국이 처리한다.
3조 조선국은 5만 원을 내어 해를 당한 일본 관리들의 유족 및 부상자에게 주도록 한다.
4조 흉도의 폭거로 일본국이 받은 피해 및 공사를 호위한 육해군 경비 중에서 50만 원은 조선국이 채워 준다. 해마다 10만 원씩 5개년 동안 완납한다.
5조 일본 공사관에 군인 약간을 두어 경비한다. 그 비용은 조선국이 부담한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1882.8.23)
이 수륙 무역 장정은 중국이 속방을 우대하는 뜻에서 사정한 것이고, 각 대등 국가 간의 일체 균점하는 예와는 다르다.
1조 청의 상무위원을 서울에 파견하고 조선 대관을 천진에 파견한다. 청의 북양 대신과 조선 국왕은 대등한 지위를 가진다.
2조 선박의 조난 구호 및 평안도, 황해도와 산동성, 봉천성 연안에서의 어업 활동을 허용한다.
3조 조선에서 청의 상무위원의 치외 법권을 인정한다.
4 북경과 한성의 양화진에서 개잔(開棧)의 무역을 허락하되 양국 상민의 내지 채판을 금하고, 다만 내지 채판이 필요할 경우 지방관의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5조 책문과 의주 그리고 훈춘과 회령 간의 국경 무역을 존속시킨다.
6조 청국 윤선의 항로 개설권, 청국 병선의 조선 연해 내왕권 및 조선 국방 담당권을 허용한다.
7조 장정의 수정은 북양 대신과 조선 국왕의 자문으로 결정한다.
 




한성조약 (1885.1) ‘갑신정변 후
1. 조선국은 국서를 일본국에 보내 사의를 표명할 것
2. 해를 당한 일본국 인민의 유족 및 부상자를 구휼하고 상인의 화물이 훼손, 약탈된 것을 보상하기 위해 조선국에서 10만 원을 지불할 것
3. 이소바야시 대위를 살해한 흉도를 수색, 체포하여 엄벌에 처할 것
4. 일본 공관을 새로운 곳으로 옮겨 지어야 되므로 조선국은 마땅히 땅과 집을 교부하여 공관 및 영사관으로 사용토록 할 것이며, 그 수축, 중건을 위해 조선국은 다시 3만 원을 지불하여 공사비에 충용토록 할 것
5. 일본 호위병의 막사는 공관 부지를 택하여 정하고 제물포 조약 제5관에 비추어 시행할 것




톈진 조약 (1885) ‘갑신정변 후
1. 중국은 조선에 주둔하는 군대를 철수하며 일본국은 공사관의 호위를 위하여 조선에 주재한 병력을 철수한다.
2. 장래 조선국에 만약 변란이나 중대 사건이 일어나 청일 양국 혹은 어떠한 국가가 파병을 요할 때는 응당 그에 앞서 쌍방이 문서로 통지해야 한다. 그 사건이 진정된 뒤에는 즉시 병력을 철수하며 잔류시키지 못한다.



갑신정변 14개조 정강 (1884)
1. 대원군은 가까운 시일 안에 돌아오게 하고 청에 조공하는 허례의 행사를 폐지할 것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제정하고 능력에 따라 관리를 등용할 것
3. 지조법을 개혁하여 간사한 관리를 뿌리 뽑고 백성의 곤란을 구제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4. 내시부를 없애고 그 가운데 재능이 있는 자는 등용할 것
5. 국가에 해독을 끼친 탐관오리는 처벌할 것
6. 각 도의 환곡을 영구히 폐지할 것
7. 규장각을 폐지할 것
8. 급히 순사를 두어 도둑을 막을 것
9. 혜상공국을 폐지할 것 (보부상)
10. 그 전에 유배, 금고된 사람들은 사정을 참작하여 석방할 것
11. 4영을 합쳐 1영으로 하고 영 중에서 장정을 뽑아 근위대를 설치할 것, 육군대장은 세자를 추대할 것
12. 재정은 모두 호조에서 관할케 하고 그 박의 재무 관청은 폐지할 것
13. 대신과 참찬은 합문 안의 의정부에서 회의 결정하고 정령을 공포해서 시행할 것
14. 정부는 6조 외의 불필요한 관청은 모두 없애 대신과 참찬이 협의해서 처리케 할 것
 
 
 
 
폐정개혁안 12개조 ‘1895 동학
1. 동학도는 정부와의 원한을 씻고 서정에 협력한다.
2. 탐관오리는 그 죄상을 조사하여 엄징한다.
3. 횡포한 부호는 엄징한다.
4. 불량한 유림과 양반의 무리를 징벌한다.
5. 노비 문서를 소각한다.
6. 7종천인 차별을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량갓은 없앤다.
7. 청상과부의 개가를 허용한다.
8. 무명의 잡세를 일체 폐지한다.
9. 관리 채용에는 지체와 문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갑신은 문벌 폐지)
10. 왜와 통하는 자는 엄징한다.
11. ·사채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을 무효 한다.
12.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한다.




홍범 14( 2차 갑오개혁 ) (1895)
1. 청국에 의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확실히 자주독립하는 기초를 확고히 세울 것
2. 왕실 전범을 제정하여 왕위의 계승과 종실, 외척의 구별을 밝힐 것
3. 대군주가 정전에서 일을 보되, 정사를 친히 각 대신에게 물어 재결하며 왕비와 후궁, 종실과 척실이 간여하지 못하게 할 것
4.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모름지기 나누어 서로 혼합하지 아니할 것
5. 의정부와 각 아문의 직무 권한을 명확히 제정할 것
6. 인민에 대한 조세 징수는 법령으로 정해서 명목을 덧붙여 함부로 거두지 말 것
7. 조세의 징수,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 관할할 것 (탁지부 아님, 갑신은 호조)
8. 왕실 비용을 솔선 절감하여 각 아문 및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할 것
9. 왕실 비용 및 각 관부 비용은 일 년 예산을 세워 제정의 기초를 세울 것
10. 지방 관제를 속히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직권을 제한할 것
11. 나라 안의 총명한 자제를 널리 파견하여 외국의 학술과 기예를 보고 익히게 할 것
12. 장관을 교육하고 징병하는 법을 사용하여 군제의 기초를 확정할 것
13. 민법과 형법을 엄격하고 명확하게 제정하고, 함부로 사람을 가두거나 징벌하지 말게 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할 것
14. 문벌과 지연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쓰고, 세상에 퍼져 있는 선비를 두루 구해 인재의 등용을 넓힐 것
 
 
헌의 6(독립협회, 관민공동회, 1898.10)
1. 외국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관민이 동심 합력하여 전제 황권을 공고히 할 것
2. 외국과의 이권에 관한 계약과 조약은 각 대신과 중추원 의장이 합동 서명하고 시행할 것
3. 국가의 재정은 탁지부에서 전관하고, 예산과 결산을 국민에게 공포할 것(홍범은 탁지아문)
4. 중대 범죄를 공판하되, 피고의 인권을 존중할 것
5. 칙임관을 임명할 때는 의정부에 자문하여 과반수를 얻은 자를 임명할 것
6. 정해진 규정을 실천할 것
 
 



가 집권한 후 어느 회의 석상에서 음성 높여 여러 대신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리를 끌어다 지척을 삼겠으며, 태산을 깎아 내려 평지를 만들고, 또한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려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오?”라고 하였다.
- 매천야록
 
16. 기상9
밑줄 친 ? 흥선대원군
*천리를 끌어다종친을 높임
*태산을 깎아노론을 억압
*남대문을 3층으로남인을 천거
흥선대원군은 당파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여 세도 정치를 타파하려고 하였다.
 




 
밖으로는 널리 구미 각국과 신의로써 친교하고, 안으로는 정책을 개혁하여 어리석은 인민을 문명의 도로써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상업을 일으켜서 재정을 확충하고 군사를 길러야 합니다.
 
07.세무9/ 14.기상9
김옥균, 국왕 폐하께 대한 탄원(1886)
갑신정변 후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이 고종에게 올린 상소로 개화 정책 추진을 역설하였다.
 (94년에 죽음)





 
서양 오랑캐의 화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홍수나 맹수의 해보다 더 심합니다. 전하께서는 부지런히 힘쓰시고 경계하시어 안으로는 관리들로 하여금 사학의 무리를 잡아 베게 하시고, 밖으로는 장병으로 하여금 바다를 건너오는 적을 정벌케 하소서.
 
13.기상9
이항로 <척화주전론> 60‘s 위정척사





 
 
저들 교활한 오랑캐는 자기들의 생각하는 바를 눈 속의 못으로 삼아 갖은 방법을 다하여 구멍과 간격을 뚫어 반드시 우리와 교통을 하고자 바랄 뿐이니 그 밖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만일 교통의 길을 열면 저들의 영위하는 바는 사사건건 뜻대로 이루어져서 점차 막힘이 없어 2-3년이 지나지 않아서 전하의 백성으로서 서양 사람으로 변하지 않은 자가 얼마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는 장차 누구와 더불어 임금 노릇을 하시려 하십니까?
 
09.국가7
기정진 <노사집> 60‘s 위정척사
 




 
일단 강화를 맺고 나면 저들은 물화를 교역하는 데 욕심을 낼 것입니다. 저들의 물화는 모두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기이한 노리개로, 손으로 만든 것이어서 그 양이 무궁합니다, 우리의 물화는 모두 백성들의 생명이 달린 것이고 땅에서 나는 것이므로 한정이 있습니다. ··· 저들이 비록 왜인이라고 하나 실은 양적입니다. 강화가 이루어지면 사악한 서적과 천주교가 다시 들어와 나쁜 기운이 온 나라를 덮게 될 것입니다.
 
14.국가7
최익현 <<왜양일체론>> <5불가소>
70‘s 위정척사
 




 
러시아와 미국, 일본은 같은 오랑캐입니다. 그들 사이에 누구는 후하게 대하고, 누구는 박하게 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
[ ]은 우리가 신하로서 섬기는 나라로, 신의를 지켜 속방이 되어 온 지 2백 년이 되었습니다.
[ 일본 ]은 우리에게 매여 있던 나라입니다.
[ 미국 ]은 우리가 본래 모르던 나라입니다. 돌연히 타인의 권유로 불러들였다가 그들이 우리의 허점을 보고 어려운 청을 강요하면 장차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입니까?
[ 러시아 ]는 본래 우리와는 싫어하고 미워할 처지에 있지 않은(우리와 혐의가 없는) 나라입니다.
 
13.지방7
이만손 <영남만인소> 80‘s 위정척사
 





 
원통함을 어찌하리. 국모의 원수를 생각하면 이미 이를 갈았는데, 참혹한 일이 더욱 심하여 임금께서 또 머리를 깎으시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 부모에게 받은 머리털을 풀 베듯이 베어 버리니 이 무슨 변고입니까
이에 감히 먼저 의병을 일으키고서 마침내 이 뜻을 세상에 포고하노니, 위로 공경에서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가 애통하고 절박한 뜻이 없겠습니까.
 
13.기상9
유인석의 창의문, 1895년 을미의병
 



 
5. 시급히 방곡령을 실시하여 구민법을 채용토록 할 것
6. 시장에서 외국 상인의 출입을 엄금시킬 것
8. 금광의 채굴을 금지하고 인민의 방책을 꾀할 것
9. 사전을 혁파하고 균전으로 하는 구민법을 채택할 것
12. 도우(屠牛, 소를 죽임)를 엄금하여 농사를 못 짓게 하는 폐해를 제거할 것
13. 다른 나라에 철도 부설권을 허용하지 말 것
 
대한사민논설
1900, 활빈당 강령(영학당, 동학당도 활빈당으로 들어감)



무릇 개화란 인간의 온갖 만물이 가장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일컫는데 개화에는 인륜개화, 학술개화, 정치개화, 법률개화, 기계개화, 물품개화가 있다.
인륜개화는 천하만국을 통하여 그 동일한 규모가 천만 년이 지나도 장구함이 변하지 않거니와 정치 이하의 여러 개화는 시대에 따라서 변개하기도 하고 지방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그런고로 옛날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맞지 않으며, 저쪽에는 좋지만 이쪽에는 좋지 않은 것도 있어, 곧 고금의 형세를 살피고 피차 사정을 비교하여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리는 것이 개화의 대도(大道)이다.
 
08.지방7
유길준 <서유견문> 1895년
 



 
() 서양 종교는 사교이므로 마땅히 음탕한 음악이나 미색처럼 여겨서 멀리해야겠지만, 서양 기계는 이로워서 진실로 백성의 생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다.
 
() 오늘날 급선무는 인재를 등요하며 국가 재정을 절약하고 사치를 억제하며, 문호를 개방하고 이웃나라와 친선을 도모하는 데 있다. 일본은 법을 변경한 이후로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한다.
 
16.국가7
() 1882년 고종이 내린 전교, 김윤식 영향, 동도서기론
() 김옥균, <치도약론>(1883), 급진적 개화
 



 
군신, 부자, 부부, 붕우, 장유의 윤리는 인간의 본성에 부여된 것으로서 천지를 통하는 만고불변의 이치이고,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도()에 해당됩니다. 반대로 배, 수레, 군사, 농사, 기계 등 편민이국(便民利國)하는 것은 외형적인 것으로서 기()에 해당합니다. 신이 변혁을 꾀하고자 주청드리는 대상은 기이지 도가 아닙니다.
 
12.7
온건 개화파 윤선학의 상소, 동도서기론
 
 




그들의 실패는 우리에게 무척 애석한 일이다. 내 친구 중에 이 사건을 잘 아는 이가 있는데, 그는 어쩌다 조선의 최고 수재들이 일본인에게 이용당해서 그처럼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참으로 애석하다고 했다. 어찌 일본인이 조선의 운명과 그들의 성공을 위해 노력을 다했겠는가? 우리가 만약 국가 발전의 기미를 보였다면 일본인들은 백방으로 방해할 것이 자명한데 어찌 그들을 원조했겠는가?
- 한국통사
15.서울9
그들이 추진했던 정책은? 갑신정변
박은식이 갑신정변에 대해 서술한 글
 







내각 명단
좌의정 - 이재원
우의정 - 홍영식
전후영사 - 박영효
좌우영사 - 서광범
병조참판 - 서재필
호조참판 - 김옥균

13.법원9
주요 관직에 다수의 급진 개화파 인사들, 특히 김옥균이 호조참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갑신정변 직후에 조직된 내각임을 알 수 있다.
(김옥균은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 청에서 피살)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르렀음은 그 뜻이 결코 다른 데 있지 않다. 백성을 도탄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라. 안으로는(반봉건)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반외세)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구축하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 앞에 고통을 받는 민중, 수령과 방백 밑에 굴욕을 받는 아전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이라. 조금도 주저치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16.기상9
백산 봉기 격문 (호남창의문)
 
 





우리는 비록 초야에 묻힌 백성이지만, 임금의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고, 임금의 옷을 입고 사는 사람이라, 어찌 국가의 위망을 앉아서 보겠는가. 팔로(八路)가 마음을 합하고 억조창생이 뜻을 모아 이제 의로운 깃발을 들어,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호남창의문
 
14.국가7
 





 
은 모두 천민 노예이므로 양반, 사족을 가장 증오하였다. 길에서 갓을 쓴 자를 만나면 곧바로 꾸짖으며 말하였다. 너도 양반인가? 갓을 빼앗아 찢어 버리거나 자기가 쓰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양반을 욕 주었다. 무릇 집안 노비로서 을 따르는 자는 물론이요, 비록 적을 따르지 않는 자라 할지라도 모두 을 끌어다 대며 주인을 협박하여 노비 문서를 불사르고 면천해 줄 것을 강요하였다. 백정이나 재민들도 평민이나 양반과 평등한 예를 하였으므로 사람들은 더욱 치를 떨었다. -<오하기문>
 
15.7
밑줄 친 ? 동학 농민군 (오하기문은 황현이 씀)



 



 
첫째,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둘째,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셋째, 일본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 잡는다.
넷째, 군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 권신귀족을 모두 제거한다. - 정교, <대한계년사> (고종 1년(1864)부터 대한제국 멸망(1910)까지 조선 시대 말년의 역사)

15.법원9 / 10.경북교행9
백산 봉기 때 동학 농민군 4대 강령






피고는 일본 군대가 대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필시 일본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자 하는 뜻인 줄 알고 일본병을 물리치고 그 거류민을 국외로 쫓아낼 마음으로 다시 기병(起兵)을 도모하였다. 9월경 태인을 출발하여 삼례역에 이르러 그곳을 기병하는 핵심 본부로 삼았다.
 
12.법원9
피고: 전봉준,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내정을 간섭하는 데 반발하여 일으킨 2차 동학 농민 운동을 보여준다.






 
 

 
총재 1, 부총재 1, 그리고 16명에서 20명 사이의 회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이밖에 2명 정도의 서기관이 있어서 활동을 도왔고, 또 회의원 중 3명이 기초위원으로 선정되어 의안의 작성을 책임졌다. 총재는 영의정 김홍집이 겸임하고, 부총재는 내아문 독판으로 회의원인 박정양이 겸임하였다.
13.국가9
내아문독판’, 김홍집 총재로 보아 제1차 갑오개혁 당시임을 알 수 있으므로, 제시문의 기구는 군국기무처이다.
 




()하여 말하기를 ()/를 획일케 하는 것은 나라의 선무(先務)신구(新舊)제에서 좋은 점을 참작하여 규칙을 만들어 반시(頒示)하고 새로 만든 바, (), (), (), ()을 이제 활용할 것이니 먼저 한성 및 각 항시(港市) 대도회부터 촌리(村里)까지 두루 미치게 하여, 이로써 답습한 오류를 씻어 모두가 대동(大同)하게 해야 할 것이다. (광무 791)
 
07.세무9
(): 도량형

갑오개혁 1차개혁에서 도량형을 개편하여 일본식으로 통일하였습니다.
그후 대한제국기에는 본격적으로 도량형 규칙을 제정하여 도량형 제도를 법제화한 의의가 있답니다.
 




 
*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군등(郡等)5등을 할 것
* 군청은 태하동에 두고,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 석도를 관할 할 것
 
15.사복9
1900년 반포된 대한 제국 칙령 제41
 





 
군대를 움직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부대의 고립을 피하고 일치단결하는 데 있으니 각 도 의병을 통일하여 둑을 무너뜨리는 형세로 경기로 쳐들어간다면 온 천하에 우리 물건이 안 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15.기상9/ 12.지방7
정미의병 당시 13도 창의군의 격문
 
 



 
 
우리에게 이웃 나라가 있어도 스스로 결교(結交)하지 못하고 타인을 시켜 결교하니 이것은 나라가 없는 것이요, 우리에게 토지와 인민이 있어도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타인을 시켜 대신 감독하게 하니, 이것은 임금이 없는 것이다. 나라가 없고 임금이 없으니 우리 삼천리 인민은 모두 노예이며 신첩일 뿐이다. 남의 노예가 되고 남의 신첩이 된다면 살았다하여도 죽는 것만 못하다.
 
10.국가7
최익현 <포고팔도사민>, “팔도(전국)의 사민(모든 국민)에게 고함”, 을사의병 활동대마도로 유배, 순절
 
 
 
 


 중앙 체제 개편에 관한 법안
-내무아문: 지방 인민을 다스리는 사무를 총괄한다.
-외무아문: 교섭과 통상사무와 공사관, 영사관 감독을 맡는다.
-탁지아문: 적국 재정의 회계 출납과 조세 국채 및 화폐 등 일체 사무를 총괄하며 각 지방의 재무를 감독한다.
-농상아문: 농업, 상업, 예술 어업과 사냥, 식물과 가축, 광산, 지질 및 영리 목적의 회사 등 일체 사무를 관장한다.
개국 5036
독사n
위의 법안을 확정한 기구는?
통리기무아문 입법권을 가진 초정부적 기구였다.







 
 
세계의 형세를 두루 살펴 보건대 부강하고 독립하며 웅시(雄視)하는 모든 나라는 다 국민의 지식이 개명하였도다. 이 지식의 개명은 교육의 선미(善美)로 이룩된 것이니,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라 하리로다. 그러므로 짐은 군사(軍師)의 자리에 있어 교육의 책임을 지노라. 또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이름과 실제 소용을 먼저 분별하여야 하리로다.
 
교육입국 조서(1895.2), 갑오 2
 
 
 






 국민에게 민족의식과 독립 사상 고취
동지를 발견하고 단합하여 국민운동 역량 측정
상공업 기관 건설로 국민의 부력(富力) 증진
교육 기관 설립으로 청소년 교육 진흥
 
16.서울7
4대 강령
 
 
이 단체의 목적은 한국의 부패한 사상과 습관을 혁신하여 국민을 유신케 하며, 쇠퇴한 발육과 산업을 개량하여 사업을 유신케 하며, 유신한 국민이 통일 연합하여 유신한 자유 문명국을 성립케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 깊은 뜻은 열국 보호 하에 공화 정체의 독립국으로 함에 목적이 있다고 함.
 
06.법원9
이 단체’:
 
 
무릇 우리 대한인은 내외를 막론하고 통일 연합으로써 그 진로를 정하고 독립 자유로써 그 목적을 세움이니, 이것이 원하는 바이며 품어 생각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오직 신정신을 불러 깨우쳐서 신단체를 조직한 후에 신국가를 건설할 뿐이다.
 
1907년 신회 창립 강령
 
 
 
우리는 조선 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해방의 실현을 도모한다.
우리는 전 민족의 총역량을 집중하여 민족적 대표기관이 되기를 기한다.
우리는 일체의 개량주의 운동을 배척하여 전 민족의 현실적인 공동 이익을 위하여 투쟁한다.
 
1927년 신회 강령
 
 
민주주의적 노력의 결집으로 인하여 전개된 정치적 운동의 방향에 대해서는 그것이 필요한 과정의 형세인 이상, 우리는 차갑게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다. 아니 그것보다도 먼저 우리 운동 자체가 벌써 종래에 국한되어 있던 경제적 투쟁의 형태에서 보다 더 계급적, 대중적, 의식적 정치 형태로 비약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전환기에 달한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적 세력에 대해서는 그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성질을 명백히 인식하는 동시에 과정적, 동맹자적 성질도 충분히 승인하여, 그것이 타락하는 형태로 출현되지 아니하는 것에 한해서는 적극적으로 제휴하여 대중의 개량적 이익을 위해서도 종래의 소극적 태도를 버리고 분연히 싸워야 할 것이다.
12.국가7/ 08.지방9/ 08.지방7/
정우회 선언(1926.11) ‘좌익 최대 단체의 자진 해산
 
 
러시아는 회의 초청장을 대일 견제와 설욕의 감정이 고조된 시기에 한국 측에 발송하였다. 회의에 대한 제국을 초청한 까닭은 주창국인 러시아가 패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립을 명분삼아 그들의 기득권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회의 초청은 러시아가 일본의 한국보호에 타격을 주기 위해 다수의 열강이 한국의 독립을 보장하도록 할 목적으로 특사 파견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기위한 것이었다.
 
16.법원9
대한제국’, ‘러시아가 패전으로 보아 러일전쟁 후
일본의 한국 보호로 보아 1905년 을사늑약 후
특사 파견으로 보아 이상설, 이준, 이위종 헤이그 특사
밑줄 친 회의?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 (1907)
* 헤이그: 네덜란드 정치의 중심지
 
 
 
 
 
 
 
 
 
 
 
난리를 겪다 보니 머리가 하얗게 세었구나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가물거리는 촛불이 푸른 하늘에 비치는구나.
 
요망한 기운에 가려져 제성(帝星:황제의 별)이 옮겨짐에
구중궁궐은 침침하여 하루해가 더디겠구나.
이제부터는 조칙(어명)조차 받을 길이 없으니
구슬 같은 눈물이 천 가닥으로 흐른다.
 
나는 새와 들짐승도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우리 세상 이미 잠기고 빠져버렸구나
가을 등잔아래 책 덮고 흘러간 긴 역사 생각하니
인간 세상의 글 아는 자 되기 정말로 어렵도다.
 
내 일찍이 나라 위해 서까래 하나 놓은 공도 없었으니
내 죽음은 겨우 인()을 이룰 뿐 충()을 이루진 못했어라
이제 겨우 윤곡(尹穀)처럼 죽음에 거칠 뿐
그때의 진동(陳東)처럼 나라 위하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07.법원9/ 16.서울7
매천 황현, <절명시> (41, 3수 출제)
1910년 한일 병합으로 국권이 피탈 당하자 자결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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