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사료 캡처 두번째

첫번째 사료 임진왜란
두번째 사료 아관파천

공약삼장 3.1운동 기미독립선언서 한용운

진주임술농민봉기

1900년 화적 - 활빈당 (변장)

충혜왕 (장백상, 국새 회수)
역분전 - 관등 관계없이 그냥 공신에게 줌 (직관 어쩌구 관계 x)
시정 - 관등 인품 고려, 전직 현직 관리
개정 - 관등만 고려, 전직 현직 관리
경정 - 현직 관리에게만, 무신 차별 완화, 한외과 소멸, 공음전 신설

각종 친일 단체 조직케 할것 - 1920년대
(사이토)
우리에게 독립이 아니면 원자폭탄을 달라!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이승만과 김구 만세!
유엔 임시 위원단 환영, 조선의 독립 없이는 평화도 있을 수 없다.
-> 2차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되고 유엔 총회 개최 이후

- 세조 아니고 성종
왕이 변발을 하고 호복을 입고 전상에 앉아 있었다. 이연종이 간하려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왕이 사람을 시켜 물었다. 이연종이 말하기를..."변발과 호복은 선왕의 제도가 아니오니, 원컨대
전하는 본받지 마소서."
-> 공민왕 몽고풍 일소, 충렬왕 아님 (왜냐하면 충짜가 들어가기 때문에)
팔달산을 멀리 바라보니 웅장하다 -> 정조 수원화성

조광조

임꺽정 (명종)
vs 홍길동은 연산군// 장길산은 숙종

6월 민주항쟁(계엄 얘기x, 전국단위, 수백만명 인원)
민족의 자주성을 영사시로 표현 - 동명왕편, 이규보

6.10 만세운동

고려사 - 조선건국을 정당화하는 입장에서 고려의 역사 정리
삼가 삼국 이하의 여러 역사를 뽑고 중국사를 채집하였으며, 편년체를 취하여 사실을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범례는 모두 '자치통감'에 의거하고 '자치통감강목'의 첨삭한 취지에 따라 중요한 것을 보존하는 데 힘썼습니다. 삼국이 병립하였을 때는 삼국기, 신라가 통일하였을 때는 신라기, 고려 때는 고려기, 삼한 이전은 외기라 하였습니다. 1400년 동안 국가의 흥망과 임금의 잘잘못을 비롯하여 정치의 성쇠를 모두 거짓없이 기록하였습니다.
-> 동국통감

왕 - 광종 (성종때 최승로의 오조정적평 = 태혜정광경)

태화 - 진덕여왕 or 지두우 분할 당시 북위 효문제의 연호(사료에서는 후자)
인평 - 선덕여왕

흥덕왕때도 태화 연호 쓴적도 있음 (사치금지령 관련)

임술농민봉기 (동학농민 아님)
궁민 = 생활이 어렵고 궁한 백성

세조 - 직전법(녹봉 언급)
vs 경정전시과(산관 탈락을 알려주는 문장이 나온다, 녹봉 언급 안됨)
+ 공경대부 = 조선시대 재상들을 이르는 말

1970년 8.15 평화통일구상선언(호혜 ~ 문호를 개방한다)
-> 이후 7.4 남북공동선언
공동~과 려순을 중심으로~
- 동양평화론 - 안중근

제2의 3.1운동을 계획한 천도교 자주독립선언문 (1922년)
1. 우리나라도 200여 년을 지내 지금 중쇠에 이미 이르렀으니, 바로 천명을 연속시킬 때이다.
-> 이이
2.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어 이를 풍류라 하였다 ~ 축건태자의 교화 그대로이다.
-> 최치원(난랑비)
3.요하 동쪽에 별천지가 있으니, 중국과 확연히 구분되도다~ 중국인들이 우리더러 소중화라 하네.
-> 이승휴
이이의 성학집요
백제 성왕
고려시대 화폐
성종 ㅡ건원중보(철전+동전)
철전은 기록 동전은 실제 유물발견
숙종 ㅡ 의천이 건의함
물물교환시기라 화폐통용이되질않음
의천 화폐를 귀금속으로하면 된다 ㅡ은병만듦
은병 가치가 매우 높기에 거스름돈을 써야함
삼한,해동통보등 활성
나중 위조문제로 망함
ㅡ충혜왕때 소은병 만듦
또 망함
원간섭기 원화폐 보초가 들어와 유통
우리나라 지폐(저화)는 공양왕이 최초지만 조선건국으로 인해 사용 못하고 폐기
조선
이방원이 발행 후 시전에 강제 유통 ㅡ 망
세종 ㅡ 조선통보발행 , 원자재 부족으로 망
세조 ㅡ 팔방통보 , 전시에 화살촉으로 활용하려는 기괴함 결국 통용×
인조ㅡ 조선통보(팔분체) , 상평청에서 주관(상평통보아님)
여기서 썰 품
원래 교과서에 인조때 상평통보 발행 숙종때 법화인정 으로 쓰여있고 가르쳤지만 자신의 후배가 이의제기했다함
당시국정교과서 오류250개정도지적 150개정도만 받아들여졌는데 상평통보도해당한다고함
인조때 상평청에서 조선통보발행이 와전되어 상평통보라 잘못 전해졌다고함
효종 ㅡ상평지전(상평통보인지 상평청에서 만든건지 모름) 사료부족
숙종ㅡ 상평청등 여러기관에서 상평통보 발행
화폐가 발행하고 부족현상이일어남
사람들이 화폐를 안쓰고 쟁여놈
결국화폐 부족으로 화폐가치가오르고 물가가 떨어짐
당시 이익은 화폐 폐기를 박지원은 화폐 더 찍자고 제의
후에 1냥이 상평통보 100개 한양내 기왓집 2000냥수준
고액전 필요 주장 (정약용 박지원등)
충혜왕
충숙왕 복위(충혜왕 아웃)
-> 전두환 민정당 창당시
대야성 - 의자왕
독립협회

안정복 - 동사강목

정군과 보인에 대한 사료 - 세조
김사형 쓰시마 정벌 - 태조
거북선, 비거도선 - 태종
신숙주, 남이, 강순 등이 건주위의 여진 정벌 - 세조
구삼국사를 얻어 동명왕본기를 보니 그 신이한 사적이 세상에 전하는 것보다 더 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못해 귀환으로만 여겼는데 세 번 반복하여 읽어서 점점 그 근원에 들어가니 환이 아니고 성이며 귀가 아니고 신이었다.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장차 무엇을 볼 것인가.
동명왕편 - 이규보

신채호 - 독사신론
민영익
갑신 때 칼빵 맞고 에렌이 치료해줘서 광혜원을 알렌이 고종이 지을 수 이ㅆ게 해줌
원래 급진개화파라 임오군란때 공격당했는데 살았고 이후에 온건개혁으로 전향해서 급진개혁파랑 척지게 됨
임오군란때 민겸호 죽고, 갑신정변때 민영익 죽을뻔햇는데 알렌이 살려주자나
독립협회 관민공동회 백정 박성춘
함평농민회의 - 1970년대(함평 고구마사건과 관련 있는건 새마을 운동 피폐해진 농가들 때문에)
정비석의 장편 소설 자유부인이 서울신문에 연재 시작 (전두환)
7.30 교육 개혁 조치로 과외 전면 금지 (전두환)
임오군란 - 배상금지급 + 경비주둔(제물포) 55만원
갑신정변 - 신축비용(한성) 12만원
1.호조에서 관할 - 갑신정변
2.탁지부 - 헌의6조 or 2차 갑오개혁
3.탁지아문 - 갑오개혁 (1차)
2.탁지부 - 헌의6조 or 2차 갑오개혁
3.탁지아문 - 갑오개혁 (1차)
오호라, 작년 10월에 저들이 한 행위는 만고에 일찍이 없던 일로서......우리 의병군사의 올바름을 믿고, 적의 강대함을 두려워하지 말자. 이에 격문을 돌리노니, 도와 일어나라”( 격문 인용, 이광린.신용하 편저 일지사 참조)
최익현 의병 격문
고려 목종
민족 혁명당 결성 당시 김구와 이동녕 등은 불참하였고, 한국 국민당 (1935)을 창당하였다.
(민족혁명당 키워드 = 난징)
민족혁명당 - 의열단․조선 혁명당․한국 독립당․신 한 독립당․대한 독립당를 연합하여 1932년에 한국 대일 전선 통일 동맹을 결성하였고 1935년 민족 혁명당으로 발전하였다
조소앙(한국 독립당) 및 지청천(민족 혁명당의 일부 세력)이 민족 혁명당 에서 탈퇴하였으며, 1937년에 좌파 중심의 조선 민족 혁명당으로 재정비되 었다.
민족혁명당은 1937년 좌파 중심의 조선민족혁명당을 구성하고 산하 군사 조직으로 조선 의용대(1938)를 두었다. 동북항일연군은 1936년 중국 공산당 지도 아래 만주에서 만들어진 군사조직이다.
최치원
김구가 전화때문에 되살아난 사건 (1896년)
대저 옛 성인은 예악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인과 의로
가르침을 베풀었으므로 괴력난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제왕이 일어날 때는 부명에 응하
고 도록을 받아서, 보통 사람과는 다른 것이 있다.
…… 그런즉 삼국의 시조가 모두 신이한 데서 나왔다
는 것이, 무어 괴이할 것이 있으랴.
삼국유사
좌원과 우원이 나왔다 무슨학교 -> 육영공원 86
우리가 의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을 -> 동학농민운동
무령왕 - 키워드는 여말 연합, 고구려 왕은 문자왕
정제드-소론-양면학-지행합일-존언-만물일체
이규보
오하기문 작성 - 황현 (19세기 당쟁, 세도정치 폐해, 동학농민전쟁, 일제 침략 항일 전쟁)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 서울대 4.19 선언문
통감 - 한일신협약
한국광복군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오랑캐가 침범할때 싸우지 않으면 그건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한다는것은 나라를 파는것이다)
척화비
3.1 운동 직후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하여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였다.
-> 안창호
양기탁
- 1871년 평남 평양 소천에서 부친 시영과 모친 인동 장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의종, 자는 자명, 아호는 우강이다.
- 어릴 적에 양친의 지혜로운 가정 교육을 받아 한문사숙에서 총명한 아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여 일찍이 서양문물에 접함으로써 개화파 청년이 되었다.
- 이상재, 민영환, 이준, 이상설 등과 함께 개혁당을 조직하여 대혁신을 추진하다 피체되었다.
*참고로 우당은 이회영
세조
고려 광종
(종이 그 주인을 고소하고 = 노비안검법)
1. 해외 각지에 현존하는 크고 작은 단체, 겉으로 나타나 있거나 숨어 있거나를 막론하고 모든 단체를 모아 통일하여 유일무이(唯一無二)의 최고기관을 조직할 것.
2. 중앙 총본부를 상당한 지점에 설치하여 일체 한민족(韓民族)을 통치하며 각지에 지부를 두고 관할구역을 바르게 정할 것.
3. 대헌(大憲)을 제정하여 민정(民情)에 맞는 법치를 실행할 것.
4. 독립평등의 성권(聖權)을 주장하여 동화(同化)의 마력(魔力)과 자치(自治)의 열근(劣根)을 방제할 것.
5. 국정(國情)을 세계에 공개하여 국민외교를 실행할 것.
2. 중앙 총본부를 상당한 지점에 설치하여 일체 한민족(韓民族)을 통치하며 각지에 지부를 두고 관할구역을 바르게 정할 것.
3. 대헌(大憲)을 제정하여 민정(民情)에 맞는 법치를 실행할 것.
4. 독립평등의 성권(聖權)을 주장하여 동화(同化)의 마력(魔力)과 자치(自治)의 열근(劣根)을 방제할 것.
5. 국정(國情)을 세계에 공개하여 국민외교를 실행할 것.
-> 대동단결선언
고조선
황국중앙총상회(시전 상인들의 경제적 특권회복 요구)
2천만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을사조약 직후 시일야방성대곡)
2천만 동포는 함께 부활할 것이다
(3.1운동)
2천만 동포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6.10 만세운동)
영원히 노객이 되겠습니다
(백제 아신왕. 광개토대왕릉비)
노객은 백성 된 자로서 분부를 청합니다
(신라 내물왕. 광개토대왕릉비)
신라를 동이, 신라왕을 매금이라 칭하는
(장수왕. 충주고구려비)
안향은 조정에 건의하여 유학의 진흥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문무관리 6품 이상은 은(銀) 1근씩, 7품 이하는 포(布)를 내게 하였다. 이를 섬학전이라 하는데 기금을 양현고(養賢庫)에 귀속시켜 그 이식으로써 학교를 운영하도록 하였다.
- 충렬왕때
홍자번은 첨의중찬(僉議中贊)이 되었고, 이어 우중찬(右中贊)에 올라 편민18사(便民十八事)를 지어 올렸으며 왕 복위 후 공신의 호를 받고 경흥군 개국후(慶興君開國侯)에 피봉되었다.
- 충렬왕
윤휴 북벌상소 - 숙종
서리망국론 (서리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 - 남명 조식
인물성 이론
양명학
정약용
오늘의 모든 사태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오늘의 헌법 하에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유신헌법에 의한), 1973년
나는 얼마 전 비상 계염령을 내리고 국회를 해산시킨 상황에서 헌법을 개정한 대통령의 행위가 세계 여론의 냉엄한 비판을 받음과 동시에 민주적 자유를 열망하며 이승만 독재 정권을 타도한 역사를 가진 위대한 한국 국민의 힘에 의해 반드시 완전한 실패로 돌아갈 것을 확신하는 바이다.
-> 김대중이 유신에 대항
최승로
* 최언위 - 왕건 참모, 도당유학생, 발해 오광찬과 함께 906년 빈공과 급제
김구
un총회 -> 38도선 베고 -> un 소총회 -> 5 10 총선거
윤집 상소 (주전론, 후금에 대한)
*병장도설 - 문종때 수양대군이
* 오위제 - 세조
우마의 생산이 적고, 싸울 때는 창을 가지고 보병전을 잘하였다.
... (중략) ... 장사를 지낼 때에는 큰 나무로 된 곽을 만드는데, 길
이가 열 길 가량 되며 한쪽을 열어 놓아 문을 만든다.
->옥저
경관 가운데 나이가 50세 이하로서 지제고를 거치지 않은 사람은
한림원에서 출제하는 제목으로 달마다 시 30수와 부 1편을 짓게 하
고, 외관에 보임된 문신들은 스스로 제목을 달아 해마다 시 30수와
부 1편을 지어 연말에 계리편에 부쳐 올리도록 하였다.
-> 성종, 문신월과법
1935 민족혁명당
눌지왕이 아우 보해를 고구려에 보내다 (고구려 장수왕때)
궁녀 바치란거 - 원간섭기
원간섭기 - 일부일처제라 공녀 문제의 해결책으로 일부다처제 제안

문무왕 백강전투
(백제 왜 vs 당 신라) 663년

신민족주의 역사학자 손진태(조선민족사개론)
vs
신민족주의, 신민주주의 - 국민당 안재홍
연합성 신민주주의 - 남조선 신민당 백남운
노산대군 = 단종
훈민정음운해 = 영조, 신경준, 한자로 음운을 나타냄
몽골순서
김취려 격퇴(대요수국 = 거란, 1차) -> 강동성전투 (대요수국=거란, 2차) -> 살리타뒤짐 (몽골)
- > 쌍성총관부 세움 (6차) -> 삼별초 항쟁
- > 쌍성총관부 세움 (6차) -> 삼별초 항쟁
감무 파견 = 예종
동북 9성은 예종
경사교수도감 = 충렬왕 ( 7품 이하의 관리들에게 경·사를 가르치도록 하여, 1경을 통하고 1예(一藝)를 익힌 자는 우대하여 발탁, 등용하게 하였다.)
삼국접양지도 =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입증하는 근거
대한민국 칙령 제41호 =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입증하는 근거
이벌찬 비지의 딸과 혼인 = 결혼동맹 493년 (소, 동)
"~ 현명한 임금이 떨치고 일어나 ~", "~ 우리나라도 200여 년을 지내 ~"
-> 율곡이이
경과 의를 강조하는 실천적 성리학은 조식(曺植)에 해당
자신의 생일을 인수절이라 하였다 - 이자겸
ㄱ. 왕23년 처음으로 이 제도를 실시한 바, 조정의 관료들에게 관계의 높고 낮음은 논하지않고 그 사람의 성품과 행동의 선악과 공로의 대소에 따라 토지를 차등 지급하였다. (역분전)
ㄴ. 왕 원년 문무 양반 및 군인들의 봉급제도를 개선하였다. ... 이 등급한도에 들지 못하는 자에겐 모두 전 17결을 주기로 하였다. (개정전시과)
ㄷ. 선왕은 주, 현들에서 납부하여야 할 공부를 제정하였고, 왕은 이에 토지제도를 제정하였다. (시정전시과)
ㄹ. 왕 3년, 이 법을 제정하였다... 5품은 전 15결 시 5결을 주기로 하고 이것을 자손들에게까지 전해 내려가도록 하였다. (경정전시과)
ㄴ. 왕 원년 문무 양반 및 군인들의 봉급제도를 개선하였다. ... 이 등급한도에 들지 못하는 자에겐 모두 전 17결을 주기로 하였다. (개정전시과)
ㄷ. 선왕은 주, 현들에서 납부하여야 할 공부를 제정하였고, 왕은 이에 토지제도를 제정하였다. (시정전시과)
ㄹ. 왕 3년, 이 법을 제정하였다... 5품은 전 15결 시 5결을 주기로 하고 이것을 자손들에게까지 전해 내려가도록 하였다. (경정전시과)
어느 날 풍수에 대해 도림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도림은 "백제는 산과 강,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이웃 나라들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이는 하늘도 대왕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것이 옵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대왕의 위엄이 더욱 빛나도록 성곽을 높이 세우고, 화려한 궁궐도 지으시고 선왕의 무덤을 새로 만들어 위엄이 과거에서 미래까지 영원하도록 하옵소서." 라고 말했다.
개로왕 (도림한테 속음 ㅋㅋㅋ)
왕 26년 고구려왕 평성이 예와 공모하여
한수 이북의 독산성을 공격해오자, 임금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왕이 장군 주진을
시켜 갑옷을 입은 병사 3천 명을 거느리고 출발하게
하였다. 주진은 밤낮으로 행군하여 독산성 아래에 이르러
고구려 병사들과 일전을 벌여 크게 이겼다.
- 성왕 독산성 전투
(당시 신라는 진흥왕)
동학농민운동
어쩌구 저쩌구..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
세종, 청상리 재상 등용
다는 공민왕때 복주피난 사료
나 가 다 라
김취려, 강동성 - 대요수국 1차
저고여 - 1차
진포대첩 - 우왕
탁지아문 1차// 탁지부 2차
홍범14조에 '적혀'있는건 탁지아문. ㅇㅋ?
홍범14조에 '적혀'있는건 탁지아문. ㅇㅋ?
거칠고 졸렬 - 삼국사기
우리나라 3대 기전체 사서는 삼국사기, 고려사, 해동역사

가. 경부철도조약 1898 / 나. 한일의정서 1904
ㄱ,ㄴ 1899 광무개혁
ㄷ.간도협약 1909년
ㄹ. 태정관문서 1877년
신군부 퇴진, 유신철폐 - 1980년
직선제 개헌, 호헌철폐 - 1987년

청주성 (경종의 복수, 영조대에.. 이인좌)
- 이때 어영병은 이미 존재
중국 일본의 사료 500여 개를 참고하여
우리 민족 인식의 폭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조선 후기 역사서는? -해동역사

조총 - 임란 이후에 경험 (선조나 선조 이후), 훈련도감
답 1번

광해군, 이원익 답은 1번

태조 (이성계, 김사형, 황산)
사간원 독립 - 태종

숙종 (4군 방치돼서 4군 복설 논의 다시) -> 숙종때 남구만의 건의로 폐사군 복설
답. 강감찬 사당 건립 (숙종)

사료는 순조때
1. 정조 때 장용영이 설치됐으나, 순조 집권 후 장용영 폐지 후 훈련도감 강화
2. 순조 때 전형적인 사건(공노비 해방)
3. 경재소는 선조 때 폐지됨
4. 선조 때
인품 + 자단비녹 = 시정전시과
...성상을 시해하려고 모의하는 역적들이 있는데, 혹 칼로써, 혹 독약으로, 또 폐출을 모의한다고 하는데,
나라가 생긴 이래 없었던 역적들이니 급하게 토벌해서 종사를 안정시키소서…
신은 비록 신분은 미천하지만 왕실을 보존하려는 뜻을 가지고 흉적이 종사를 위태롭게 하려는 모의를 직접 보고는
호랑이 입에 먹이를 주어서 은밀히 비밀을 알아낸 후 감히 이처럼 상변하는 것입니다.
신임옥사(경종)
1) 이 사건 직후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분열하였다.(정여립의 난, 선조)
2) 이 사건으로 영창대군이 귀양가고 인목대비가 유폐되었다. (칠서의 옥, 광해군)
3) 노론 4대신이 사사되고 소론 강경파가 집권하였다. (신임옥사, 경종)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정미환국, 영조)
태조 이성계 대마도 정벌
(김사형, 태종때 혼일강리역대국도 그 인간)
항상 한 존재[一物]가 [담비와] 함께 구덩이[穴]에서 생활하는데, 혹 그를 보면 생김새가 사람과 비슷하고 키는 3척이며 담비를 잘 다루고 손칼[刀子]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 습속에 사람이 담비 가죽[貂皮]을 얻고자 하면 손칼을 구덩이 입구(穴口)에 던져 놓는다. [그러면] 이 존재가 밤에 구덩이를 나와 담비 가죽을 손칼 옆에 놓아두며 사람이 [담비 가죽]을 가지고 떠나기를 기다렸다가, 사람이 가고 난 후 손칼을 가져간다.”
고구려의 담비 교역
정제두 양명학 (안에서 구한다, 이미 알고 있다)
조선 후기 비기도참설(정감록)
- 가장 오랜 기록은 1785년 정조 09년 홍복영의 옥사사건 기록에서 나온다
- 천재나 싸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열군데의 땅이 언급됨 (십승지지)
- 세도 정치기의 불우한 민중들의 내면 속에 파고들어 유행
- 참위설, 풍수지리설, 도교 등이 혼합

가. 경부철도조약 1898 / 나. 한일의정서 1904
ㄱ,ㄴ 1899 광무개혁
ㄷ.간도협약 1909년
ㄹ. 태정관문서 1877년
신군부 퇴진, 유신철폐 - 1980년
직선제 개헌, 호헌철폐 - 1987년

청주성 (경종의 복수, 영조대에.. 이인좌)
- 이때 어영병은 이미 존재
중국 일본의 사료 500여 개를 참고하여
우리 민족 인식의 폭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조선 후기 역사서는? -해동역사

조총 - 임란 이후에 경험 (선조나 선조 이후), 훈련도감
답 1번

광해군, 이원익 답은 1번

태조 (이성계, 김사형, 황산)
사간원 독립 - 태종

숙종 (4군 방치돼서 4군 복설 논의 다시) -> 숙종때 남구만의 건의로 폐사군 복설
답. 강감찬 사당 건립 (숙종)

사료는 순조때
1. 정조 때 장용영이 설치됐으나, 순조 집권 후 장용영 폐지 후 훈련도감 강화
2. 순조 때 전형적인 사건(공노비 해방)
3. 경재소는 선조 때 폐지됨
4. 선조 때
인품 + 자단비녹 = 시정전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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