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간토기 -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 - 지배 세력이 거친무늬 거울 등 청동기 의기를 사용하여 제사를 지내거나 의식을 행함

신석기 - 눌러찍기 무늬 토기, 가락바퀴나 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이나 그물을 만드는 등 원시적 수공업 생산

슴베찌르개 - 구석기 후기

청동기 - 벼농사 시작, 간석기와 나무로 만든 농기구 사용

부도(승탑) - 신라 하대 선종 유행하면서 유행

쌍봉사 칠감선사탑 - 신라 하대에 유행한 전형적 팔각원당형 승탑

성덕대왕 신종 -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기 시작하여
혜공왕 대 완성한 범종(771)

경천사지 10층 석탑 - 원간섭기에 라마 불교의 영향으로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 삼국시대 말기 미륵신앙의 영향을 받음(고백신 모두)

서경(평양) - 고려 정종 때 천도계획// 문종때 서경기 4도 둠

1174년 서경 유수 조위총은 정중부와 이의방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반란

직지심체요절 - 청주 흥덕사에서, 고려 우왕 (1377)

지눌 - 순천 송광사 중심 (수선사 결사운동)

1009년 강조가 국왕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궁궐에 들어와 역모를 꾸미던 천추태후와 
김치양 일파를 제거

물산장려운동 - 평양, 조만식, 조선물산장려회(1922)

조선노농총동맹 등의 사회주의 계열 단체와 인사들은 물산 장려 운동이 자본가의 이익추구만을 위한 것이라며 비판

원산 총파업 - 1929, 원산, 2천 명의 노동자, 일제 강점하 최대의 총파업
(물산 장려 운동과 관련 없음)

1920년 일제가 회사령 허가제 -> 신고제
(관세를 철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반발하여 물산 장려 운동 발생)

문무왕 즉위 661년, 기벌포 전투 676년 

고구려 부흥운동은 신라에 투항(669)해 서해안 사야도(지금의 덕적도)에 있던 고구려
왕족 안승을 맞아 왕으로 삼고 신라의 원조 아래 저항을 계속함
(-> 고연무가 당군에 패하고 안승이 의견 차이로 검모잠을 죽이자 신라는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봉한 후 (670) 당을 견제하려 하였다)


663년 당나라가 신라를 지배하고자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으로 임명


황산벌 전투 660년 7월
(이후 백제는 나당 연합군의 협공으로 사비성이 함락되어 멸망)

677년 당은 보장왕을 요동도독조선국왕에 봉하였고 요동으로 돌아온 보장왕은 고구려 유민을 규합하고 말갈과 내통하여 고구려 부흥 도모


고구려 - 10여개의 관등
백제 - 16관등
신라 - 경위 17관등// 외위 11관등제
(신분제에 의하여 제약을 받음)


백제 - 도성을 5부로 나누고 지방을 5방으로 나누어 방령을 둠
(그 밑에 군과 성을 두는 행정 제도 실시)

고구려 - 지방의 5부에 욕살 파견, 그밑의 행정 단위인 성에 처려근지를 둠

신라 - 통일 이전 전국 규모의 보병 군단인 6정이 있었고, 통일 이후 이들을 지방군인
          10정으로 재편성

고구려 수상 - 대대로
발해 - 정당성 관장하는 대내상이 국정 총괄

고려 2성 6부 - 중앙정치제도

발해 5경 15부 - 지방행정제도

덕수궁 석조전 - 르네상스식 건축물(1910년)

명동 성당 - 고딕 양식

화엄사 각황전 - 17세기, 양반과 지주층의 지원, 큰 규모의 다층 건물
, 내부는 하나로 통하는 구조

예산 수덕사 대웅전 - 고려 후기, 맞배지붕 형식, 배흘림기둥, 주심포양식, 목조 건축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 고려 후기, 목조 건축물, 주심포, 배흘림기둥

서유구 - 임원경제지, 종래의 조선 농학과 박물학 집대성, 전국 주요 지역에 국가 시범 농장인 둔전을 설치하여 혁신적 농법과 경영 방법으로 수익을 올려서 국가 재정을 보충할 것을 제안(처음에는 한전론 주장 -> 둔전론 주장)

둔전론 - 국가가 주체가 되는 국영농장제의 개혁론으로서, 정부가 경영형 부농층으로 하여금 무전 농민을 고용하여 하나의 집단 농장을 형성하고 경영하게 하려고 한것.
(토지 국유론이 이루어진다면 봉건 지주층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면서 지주층의 반발을 피하고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게 됨 -> 국영농장 설치)

서유구 - 지주제 철폐 주장 x

임원경제지 - 서유구, 산림경제를 토대조선 후기 농서와 중국 농서 900여 권을 참조하여 간행한 농학 백과사전류의 저술


색경 - 숙종, 박세당이 지은 농서, 농가에서의 필수적인 상식을 정리

산림경제 - 홍만선, 농서, 거주와 주택, 수명 연장을 위한 심신 단련법 등을 비롯한 일상생활 관련 내용을 포함하여 농촌 생활과 관련된 광범위한 사항 기술


과농소초 - 박지원, 황해도 금천 연암골에서 생활하던 당시 경험을 반영하여 지은 농서
(중국 농법의 도입 및 재래 농사 기술의 개량 주장)


환구단에서 제사 지내는 환구제 -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성종때부터

고려 성종 - 왕실의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종묘와 땅의 신과 곡식 신에게 ㅈ사 지내는 사직 등의 유교 제사 시설을 건립

도교사원(복원궁) - 예종, 하늘과 별에 제사 지내는 행사(초제)

고려는 정치 체제에서는 유교이념을 수용하고 있었으므로 그 같은 유교적 교화의 근원을 기자에서 찾았다.( -> 고려 숙종때 (1102)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




복수 설치 - 병자호란의 치욕적 굴욕을 씻기위해 

효종은 북벌을 추진하면서 유사시 국왕의 보장처 역할을 했던 남한산성을 우선적으로 강화

효종은 북벌 정책을 추진할 때 이완을 어영대장으로 임명, 도성 안에 어영창을 두는 등
체제를 크게 개편하여 어영군을 북벌의 핵심 부대로 양성

훈련별대를 정초군과 통합하여 금위영 발족 - > 숙종

호위청(1623), 총융청(1624), 수어청(1627) -> 인조




양지아문 - 1898년, 대한제국, 양전사업
(1899년부터 양전사업)

지계아문 - 1901년, 지계발급

1902년 양지아문이 지계아문에 흡수됨
-> 지계아문에서 양전사업과 지계발급이 동시에 이루어짐

삼군부와 5군영 복구 -> 임오군란(별기군 = 교련병제 폐지)


통리기무아문 1880년 (청에 영선사, 일본에 수신사, 조사시찰단 파견)

신식화폐발행장정 - 군국기무처, 제1차 갑오개혁 (본위화폐제도를 시행하고 보조화폐로
동화를 사용함으로써 신식 화폐 주조)



의열단 황포탄 사건(1922) - 김익상, 오성륜, 이종암이 상해 황포탄 부두에서 일제 침략 군부의 거물인 육군대장 타나카 기이치를 암살하기 위한 투산저격 거사 -> 실패

의열단 - 1926년 초에 중국의 황푸군관학교에 입학 (중국 혁명 세력과 연계하여 공동 투쟁)

대동단결 선언 - 1917년, 중국 상해, 신규식, 조소앙, 박은식, 신채호 등 대종교, 동제사, 신한 혁명당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황제권을 포기하고 국민 주권주의와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임시 정부를 수립할 것을 내용으로 함


1919년 사이토 총독 투탄 - 노인동맹단 소속 강우규


동사강목 - 안정복, 강목법을 가미한 편년체, 단군조선 - 기자조선 - 마한 - 삼국 무통 - 통일 신라 - 고려로 이어지는 정통성 강조(고증에 필요한 확실한 근거를 갖는 문헌을 여러 가지 제시하고 상호 비교 분석하여 종합하는 방법) -> 역사 사실을 치밀하게 고증함으로써 고증사학의 토대를 쌓았다.

해동역사 - 한치윤, 기전체, 동국문헌비고 등 국내 서적은 물론 중국사서 523종과 일본 사서 22종 등 총 550여 종의 다양한 외국 자료를 광범위하게 인용하여 민족사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 이바지

여사제강 - 1667년, 현종, 서인 출신 유계, 고려 시대 역사를 강목체로 다시 서술, 고려시대의 북진 정책을 당시 서인들이 추진하던 북벌 정책과 같은 맥락으로 파악하면서 북벌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서술

동사 - 기전체, 청남의 영수였던 미수 허목, 현종, 1667년, 
세가에서는 단군, 기자, 위만, 신라, 고구려, 백제를 서술하고, 
열전에서는 부여, 숙신씨, 삼한, 가락, 대가야, 예맥, 말갈, 모라 등을 서술




1593년 행주대첩, 권율

1593년 10월, 조선과 명 연합군의 반격으로 왜군이 경상도 해안일대로 물러나자 
선조는 한성으로 돌아와 정릉동 행궁에 머무름
1597년 7월 칠천량에서 원균은 대패하고 전사
1597년 9월 원균 뒤지고 이순신 수군통제사로 재임명 후 명량대첩




고려시대 무산계는 탐라의 왕족, 여진의 추장, 향리와 노병, 그리고 공장과 악인 등에게 수여

고려에서는 문반과 무반 모두에게 문산계를 지급

고려 성종 2년부터 중국식 문산계가 정식으로 채용


김구 - 황해도 지역에서 교육 활동과 계몽 운동에 힘을 기울이는 동시에 신민회 간부로 활동 (1911년 일제가 신민회를 탄압할때 구속되어 15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름)
(1923년 국민대표회의 당시 임시정부의 고수파로 활동)
(1935년 임시정부 고수파 세력과 함께 중국 항저우에서 한국국민당 결성)
(국민대표회의의 해산을 명하는 내무부령 공포)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발췌개헌안은 김구가 죽고 난 후인 1952년

안재홍과 함께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한 인물 - 여운형

조선민족혁명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용대 이끈 인물 - 김원봉




한국독립군 (지청천) - 혁신의회 산하, 중국 호로군과 연합 작전, 중한 토일군을 조직하여 쌍성보, 사도하자, 동경성, 대전자령 전투

대조선국민군단(1914) - 대한인국민회의 연무부를 확대 개편한 것, 박용만이 1909년 6월 네브라스카 헤스팅스에서 시작한 한인소년병학교의 군사운동정신을 계승한 단체

국민부 산하의 조선 혁명군은 양세봉의 지휘하에 중국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흥경성 전투



1907년 한일 신협약(정미7조약) - 대한제국 군대 해산 요구, 해산된 군인의 상당수는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 후 의병 부대에 합류 (통감이 한국의 고등 관리를 임명하는 차관정치 실시, 비밀각서에 군대해산을 표기함으로써 대한제국 군사권 장악)

고종 헤이그 특사 파견 계기 조약 - 을사조약

을사조약 이후 최익현 상소투쟁 하고 1906년 임병찬 등과 함께 전북 태인에서 의병

화폐정리사업 - 제1차 한일협약 (1904)에 따라 재정고문에 취임한 메가타가 주도

74남북공동선언
- 남과 북은 또한 상호 중상 비방과 무력 도발 금지, 다방면에 걸친 교류 실시 등에 합의
  ->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조직지도부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운영하기로 함

1989년 1월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방북하여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 체결
1998년 11월 18일 금강호의 출발로 금강상 관광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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